안녕하세요, Claire예요. 오늘은 제가 SAP 독학으로 인수인계 없이 실무를 익혀야 했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5~6년 전, 이직을 준비하던 때였어요. 그때 저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엔 너무 바쁜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워라밸을 찾아 이직을 결심한 상태였습니다. 헤드헌터를 통해 소개받은 회사가 유럽계 본사를 둔 지금의 회사였어요.
1차는 헤드헌터와의 스크리닝으로 편하게 지나갔지만, 2차는 실제 회사 관계자들과의 면접이었고 전부 영어로 진행됐습니다. 긴장 속에서 면접을 이어가던 중,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어요. “SAP 다뤄보셨나요?” 저는 그동안 오라클 기반 시스템은 다뤄봤지만, SAP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어요. 영어로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이 질문 때문에 떨어지겠구나’ 생각했는데, 다행히 다른 커리어들을 좋게 봐주셔서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기쁨도 잠시, 입사를 앞두고 걱정이 밀려왔어요. 전임자가 개인 사정으로 갑자기 퇴사하면서 인수인계 자료가 전혀 남아있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회사 조직 구조상 실무를 지원하는 팀은 APAC 허브팀으로 별도 구성되어 있었고, 그쪽 팀과 매니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겠다”는 말에 안심하고 입사를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보니 생각보다 훨씬 쉽지 않았어요. 이전 회사들에서는 외국계라도 한국 지사 안에 선후배, 컨트롤러가 있어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한국어로 물어보고 해결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여기는 팀 체제 자체가 APAC 기반이었고, 특히 SAP는 모듈별 담당자가 전부 해외에 있어서 모든 걸 영어로 듣고, 묻고,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막상 실무에 들어가니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매달 리포트 제출 기한은 정해져 있는데, 제가 알고 있던 간단한 회계처리 한 건을 SAP 안에서 재무제표에 반영하고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조차 마치 외계어를 보는 것 같았어요. 세분화된 메뉴와 낯선 시스템 용어들 속에서, 손에 쥔 자료는 너무 간략한 데 비해 시스템 자체는 광범위했습니다. 그렇다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허브팀에 물어보기도 미안한 노릇이었죠.
문제는 이슈 하나를 해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야말로 복불복이라는 거였어요. 운 좋게 숙련된 담당자가 배정되고 승인까지 빠르게 나면 몇 시간 안에 해결되기도 했지만, 잘 모르는 담당자가 배정되면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메신저로 계속 묻고 답하며 이런저런 방법을 테스트해보다가,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담당자에게 다시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 사이 제 업무는 계속 지연됐고, 길게는 며칠씩 걸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 하나 있어요. 유럽 담당자가 문제 해결을 위해 “T-code가 뭐였나요?”라고 물었는데, 저는 그게 뭔지도 몰라서 되려 “그게 뭔가요?”라고 되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정말 진땀이 났던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유럽 담당자들은 단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줬습니다. 자기들이 만들어둔 매뉴얼을 공유해주고, 필요하면 별도로 교육 시간까지 잡아주면서요.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며 시행착오를 줄여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저만의 방법도 하나둘 터득해갔어요. 테스트 모드에 들어가서 제가 가진 권한 안에서 누를 수 있는 메뉴는 다 눌러보고, 직접 입력도 해보고 조회도 해보면서 필요한 내용을 하나씩 저만의 노트처럼 정리해나갔습니다. 그러다 정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생기면, 마감이 지나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타이밍을 골라 허브팀에 정중하게 메일을 보냈어요. “시간 되실 때 편하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같은 식으로, 바쁜 그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답은 얻어내는 저만의 요령이었죠. 그렇게 조금씩 저만의 SAP 노트를 완성해나갔습니다.
그때는 시스템을 세팅하는 방법도, 참고할 교육 자료도 남아있지 않아서 정말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얼마 전에도 원가 배분을 처리하는 메뉴에서 예전엔 없던 오류가 갑자기 발생한 적이 있었어요. IT팀에 문의하려면 티켓을 발행하고 처리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뻔했기에, 먼저 AI에게 오류 내용을 그대로 설명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 오류가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기인하는 건지 짚어줬고, 결국 특정 계정을 다른 계정으로 다시 매핑해주는 것으로 직접 해결할 수 있었어요.
이게 가능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SAP의 T-code나 메뉴 경로는 회사 내부 기밀이 아니라, SAP가 공식적으로 공개해둔 문서와 전 세계 실무자들이 오랫동안 커뮤니티에 정리해온 정보라서, AI가 이런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이 상황엔 이 메뉴, 이 코드”라고 안내해줄 수 있는 거였습니다. 물론 회사마다 다르게 커스터마이징된 화면이나 사내 전용 코드까지는 알려주지 못하지만, 적어도 “어디서부터 찾아봐야 할지” 막막함은 크게 줄여줍니다. T-code 하나를 몰라서 유럽 담당자에게 되물었던 그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예요.
돌아보면, 그때의 시행착오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낯선 시스템 앞에서 하나씩 물어보고 부딪혀가며 익혔던 경험이, 지금은 어떤 새로운 업무나 시스템을 마주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으로 남아있습니다. 혹시 지금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이 계시다면,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 시대의 SAP 독학은, 혼자 막막하게 부딪히기보다 AI라는 좋은 동료와 함께 시작하는 셈이니까요.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께 이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랍니다.